INTERVIEW
유학, 이민을 결정하기 전 가장 궁금한 점은 그곳에 먼저 간 사람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가 아닐까요? 몬트리올과 근교의 한인 분들께서 지금 현재 어떤 생활을 하며, 어떤 생각을 하시는지 들어보았습니다. 그 이야기를 가감없이 공유합니다.
한국에서 전업주부로 네 살 터울의 아이 둘을 키우던 제인(가명, 42세) 님은 애초에 뉴질랜드 조기유학을 알아봤었다. 하지만 정보를 찾아보던 중 퀘벡으로 방향을 틀었다. 드라마 <도깨비>가 방영되기 전이어서 한국에서는 퀘벡이라는 이름조차 낯설었던 시기였다.
- 처음 퀘벡으로 이민을 결심하신 이유는 뭔가요?
"처음 유학을 준비할 때부터 이민까지 생각한 건 아니었고요. 아이들 영어 교육을 목표로 2년 정도 생각했었어요. 애초에 떠나려고 했던 건, 일단 저한텐 미세먼지 문제도 심각하게 다가왔었고, 또 한국이 무한경쟁으로 흐르는 분위기가 있잖아요. 그래서 일단 떠나 오게 됐던 것 같아요. 그런데 여기서 생활을 하다보니까 애들이 이곳 생활을 좋아하게 되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길 원하지 않더라고요."
- 캐나다에서의 미래도 생각하게 되신 거군요.
"그렇죠, 아무래도... 애들이 성인이 된 후 만약 한국에서 사회생활을 하게되면 직장에서 군대식 상하관계나, 당연시되는 야근 등등... 힘든 부분이 많잖아요. 그런 걸 가급적이면 애들이 겪게 하고 싶지 않으니까요. 그러다보니 이민도 생각하게 되었고요. 퀘벡주에는 PEQ라는 프로그램(주:Programme de l'expérience québécoise, 퀘벡주 경험이민)이 있고 영주권 신청에 나이 제한이 없으니 제가 가능성이 있을 수도 있겠다 생각했어요. 지금은 직업학교 과정에 있어요.
-밴쿠버나 토론토에 비하면 몬트리올은 낯선 곳인데요, 결국 몬트리올을 선택하신 이유가 뭘까요?
자녀무상교육 부분이 컸죠. 엄마가 어학원만 다니면 애들 둘이 무상교육을 받을 수 있으니까. 다른 주는 사실 부모님들이 컬리지 이상을 가야 무상교육을 받을 수 있잖아요. 엄마들이 아이들을 케어하면서 컬리지를 다니는 건 여러 면에서 힘들 거라고 생각했어요. 돈도 돈이지만 결국 아이들 교육을 위해서 오는 건데 제가 공부 때문에 너무 힘들어지면 아이들도 덜 챙기게 되고, 여기까지 오는 의미가 없을 것 같았고요. 근데 그 결정 과정이 쉬운 건 아니었고, 솔직히 말하면, 결정하기 전에 망설이기도 많이 망설였어요.
-어떤 점 때문에 가장 주저하셨을까요?
"불어권이라는 점이죠. 저는 아이들 영어를 위해서 유학을 계획한 거였으니까요. 그런데 와서 애들이 영어교육청 소속 학교에 다니니까 학교에선 거의 영어만 쓰더라고요. 걱정한 것만큼 크게 문제가 되진 않았어요. 2년 정도 지나니까 애들이 영어로 공부하고 생활하는데 크게 어려움이 없어졌고요. 생활적인 부분에 있어서도, 몬트리올이라는 도시 안에도 영어권 동네/불어권 동네가 있고 저는 영어를 쓰는 지역에 살고 있어서 크게 불편하진 않아요."
- 아이들은 불어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나요?
"영어 학교에서는 불어를 하나의 교과목으로 가르쳐요. 아이들이 기본적인 불어 표현은 하지만 아직 만족스럽지 못한 상태이긴 해요. 요즘 애들이 불어에도 욕심을 내는 것 같아서 학원이나 튜터를 알아보려고 하는 중이에요."
-아이들 학교에 대해서 좀 더 설명해주세요. 한국 학교와 가장 다른 점이 있다면 어떤 점일까요?
"한 번은 큰애가 수학시험을 보고 시험지를 가져왔어요. 그런데 정답을 틀렸는데도 높은 점수를 받았더라고요. 정답의 숫자는 틀렸지만 풀이과정이 맞았으니 이걸 안다고 평가해준 거죠. 한국에 있을 때 제가 아이 수학을 봐줬었는데,"
-수학을 직접요?
"초등학생 수학이요, 쉬운 것들... 사실 산수죠, 산수. (웃음) 아무튼 한국 수학 시험은 초등학교 시험도 함정을 파요. 그래서 아이가 개념을 알고 있어도 실수를 해서 정답을 못 맞추는 경우들이 종종 있었어요. 애도 그럴 땐 너무 속상해하고... 그런 걸 보면 저도 생각이 많아지더라고요. 여기서는 아이가 알면 안다는 그 자체에 대해 합당한 평가를 해주니까 그런 부분이 저는 좋았어요. 아이가 노력한 부분에 대해 인정받는 거잖아요."
-학업 외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어떤가요?
"일단 다국적의 학생들이 모여있으니까 자연스럽게 여러 나라의 문화를 접할 수 있는 부분도 의미가 큰 것 같아요. 세상을 보는 눈이 좀 더 넓어질 수 있으니까요."
- 아이들은 학교에 대해 뭐라고 하나요?
"큰 애는 이곳 학생들이 대체로 순수하고 한국에서의 아이들보다 착하다고 하더라고요. 처음에 유학 올 때 이곳 아이들이 거칠거나 짓궂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괜한 걱정이었던 거 같아요. 선생님들도 절대 권위적이지 않고 오히려 친구처럼 편하게 대해주신다고 해요.작은 애는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는데 신났죠, 뭐. (웃음) 매일 바깥놀이 시간이 있어서 밖에서 뛰어놀수도 있고 애들한테 스트레스 주면서 공부시키는 분위기가 아니니까 학교는 그냥 신나게 재미있게 다니고 있어요. 교과 내용도 크게 어렵지 않고 수학 과목에서는 역시 아시아권 아이들이 상위권이더라고요. 수학 과목 덕분에 자신감이 생겨서 애가 학교에 더 잘 적응했던 거 같아요."
- 첫째 자녀분께서 학교에서 적응을 잘 하셨다고 들었어요. 공부는 어떻게 도와주셨는지 궁금해요.
큰애가 여기 와서 처음에 7학년으로 들어갔어요. 학교 갔다 와서 교과서를 보여주는데, 영어로 깨알같이 빽빽하게 적힌 교과서가 막상 눈앞에 펼쳐지니 참... 여러 가지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걸 아이가 다 이해하고 소화해 낼 수 있을까? 한국에서 원어민 영어학원을 3년간 보내긴 했지만 문법이 체계적으로 잡히지도 않았었고 writing도 선생님이 칠판에 적어주는걸 그대로 받아 적어오는... 그런 식이라 제대로 된 영어교육은 아니었던 거 같고요. 솔직히 한국에서 영어학원 보냈던 거 후회해요. 그 돈으로 차라리... 그런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 모든 조기유학생이 겪게 되는 일일 텐데, 초반의 언어적 어려움을 어떻게 돌파하셨나요?
말하기, 듣기는 시간이 지나야 해결되는 것이고, 일단은 교과서를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수준까지 독해력을 끌어올려야겠더라고요. 한국에서 대입 준비용 영단어 책을 받아서 먼저 단어부터 집중적으로 많이 외우게 했어요. 영문법 인터넷 강의를 듣게 했고요. 일단 아는 단어가 많아지니까 교과서를 읽는 속도가 조금씩 빨라지는 게 눈에 보이더라고요. 처음에는 교과서 한 페이지 읽고 해석하는데 30분은 걸렸던 거 같아요. 그런데 지금은 큰애가 그런 얘기를 해요. 그때 처음 와서 단어 외우고 문법 공부할 때 솔직히 힘들었는데 그래도 그 덕분에 지금은 학교 공부하기 그렇게 어렵지 않은 거 같다고요.
- 둘째 자녀분은 상대적으로 어릴 때 왔는데, 어땠나요?
저는 처음에 여기 와서 작은 애가 들어갈 학년의 수학 과목 수준을 알고 싶어서 서점에서 수학 학습지를 봤었어요. 수학의 수준은 크게 높지 않지만, 서술형 문제를 해석하는데 기본적인 영어는 어느 정도 필요하겠더라고요. 4학년 수학 문제를 풀려면 적어도 한국 중학교 수준의 영단어는 알아야 될 것 같았어요. 그래서 첫째가 대입 영단어 외울 때 둘째는 중학교 영단어들을 외우게 했고요. 작은 애는 1년 정도 지나니까 영어가 말까지 다 트이는 거 같더라고요. 아이가 어리다면 사실은 어떤 '공부법'을 시도하는 것보다는 충분히 기다려주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 교육 관련 정보는 어디서 얻으세요? 어느 학교가 좋다든지 튜터 선생님을 추천받는다든지...
처음 왔을 때는 아무래도 여기 먼저 오신 한인 학부형들하고 교류를 했었어요. 아는 거 서로서로 공유하고 이야기도 많이 하고, 튜터 추천도 받고요. 그런데 지금은 큰애 같은 경우는 이제 고학년이라 거의 자기가 알아서 하고 있어요. 학교에 진로상담 선생님한테도 물어보고 친구들끼리 정보를 공유하면서 본인의 진로를 찾아보더라고요. 스스로 자기 진로를 생각하고 그에 맞춰서 본인이 성적도 관리하려고 하고요.
- 오기 전에 퀘벡에 대해 많이 알아보고 오셨겠지만, 막상 퀘벡에서 자녀를 키워보니 이런 점은 생각과 많이 달랐다 그런 부분이 있나요?
캐나다의 다른 주나 미국은 12학년제인데 퀘벡은 11학년제에요. 우리나라로 치면 고등학교 2학년 때 졸업을 하는 거죠. 저는 이 11학년제라는 게 너무 낯설었어요. 대학 진학 문제에 있어서 조금 복잡해지는 부분도 있고요. 이곳에서 11학년 마치고 high school을 졸업하면 보통 cegep이라는 컬리지 과정으로 진학을 해요. 우리나라로 치면 고등학교 마치고 2년-3년짜리 컬리지를 다닌 후 4년제 대학으로 가는 거죠.
그래서 사실 저희 큰애도 11학년 마치고 나면 어떤 방향으로 가야할까 고민 중이에요. cegep의 pre-university 과정을 2년 다니고 퀘백주에 있는 university 2학년으로 입학하는 방법, 다른 주 university 1학년으로 입학하는 방법, 아니면 아예 11학년 마치고 바로 다른 주로 이동해서 12학년을 마치고 다른 주의 university로 진학하는 방법 등등 여러 가지를 생각하고 있어요. 이런 부분은 한국과도 다르지만 캐나다의 다른 주하고도 다르기 때문에 아이도 여러 방향을 놓고 고민하는 것 같더라고요.
- 생활 면에서는요? 예상과 달랐던 부분들은 어떤 것들이었나요?
소소하게 여러 가지가 있었어요. 사실 말하자면 끝도 없죠, 뭐. 나라가 다르고 문화가 다르니까... 예를 들어서 버스 타면 창문 위에 길게 노란 줄이 걸려있어요. 그게 여기선 'STOP' 버튼이거든요. 그걸 당기면 빨간색 정차 신호가 켜져요. 근데 버튼도 아니고 빨랫줄같은 걸로 그런 표시를 하는 게 한국이랑은 좀 분위기가 다르죠. (웃음) 또 지하철이나 버스탈 때 여기선 Opus라는 교통카드를 쓰는데, 한국처럼 신용카드 하나로 다 되는 게 아니라서 매달 교통카드 충전을 해야해요. 좀 귀찮긴 하지만 정액제라 한 번 충전을 하면 한 달간 무제한으로 지하철이랑 버스를 탈 수 있는 건 좋고요. 또 전 사실 이 나이에 아직도 학생요금을 낼 수 있다는 것도 한국이랑은 가치관이 다른 부분으로 느껴져요.
*주:몬트리올에서는 고등학교 레벨 이상 학교에 재학 중일 경우 교통카드 충천시 나이에 관계없이 학생 가격인 월 51불을 적용받는다.
- 아무래도 주부시다보니까 살림하시면서도 소소한 차이를 많이 느끼실 거 같아요.
네, 그렇죠. 여기 온 지 얼마 안 됐을 땐데, 주말 저녁에 애들이랑 쇼핑이나 해볼까 하고 쇼핑센터에 간 적이 있었어요. 이것저것 구경도 하고 저녁도 먹고... 한국에서는 너무너무 흔한 일이잖아요. 주말 저녁이면 거의 피크타임이고요. 근데 여기는 주말에 오후 5시면 거의 대부분의 가게가 문을 닫고 심지어 쇼핑센터도 부분적으로 셔터를 내려요. 그 날 결국 저녁도 못 먹고 돌아왔죠.(웃음)
또 뭐가 있으려나... 아, 여기 아파트들은 집집마다 세탁기가 있는 게 아니라 공용 세탁실을 쓰는 곳이 많다는 것도 한국이랑 많이 다른 점이에요. 이 부분은 많이 불편하고요. 그래서 집에 세탁기를 설치할 수 있는 콘도나 아파트로 이사하시는 분들도 많이 봤어요.
- 누군가 몬트리올로 자녀 동반 유학을 오신다고 하면 권하시겠어요?
네. 물론이죠. 첫째로 교과서 상으로, 학원에서 배우는 언어가 아니라 살아있는 언어를 접할수 있는 게 정말 크고요. 언어 뿐만 아니라 세상을 보는 눈, 다양한 문화를 접할 수 있다는 게 아이들이 앞으로 살아가는데 큰 자산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준비과정에서 조언해주실 말씀이 있다면?
글쎄요. 아이마다, 집집의 상황마다 다를 것 같아요. 하지만 일반적으로 봤을 때 유치원 단계의 아주 어린 아이가 아니라면 아이가 들어가는 학년의 단어 공부는 미리 준비하는 것이 빨리 적응하는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자신감도 생기고요. 물론 여기 와서 적응해도 늦는 건 아니에요. 영어로 말하고 듣는 능력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나아지는 거니까 너무 조급한 마음에 아이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말도 통하지 않는 낯선 환경에서 혼자 적응해나가야 하는 아이들은 엄마보다 더 조급하고 불안하니까요. 학교에서 한 마디도 제대로 못하고 1년을 보낸 아이... 못하고 있는게 아니라 말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부모님이 준비하실 것은 아이들 수준에 맞는 영어 단어 공부와 기다려주는 느긋한 마음인 것 같습니다.
* 인터뷰 내용은 2019년 1월 시점 기준입니다
* 소중한 경험을 나눠주신 인터뷰이 제인(가명)님께 감사드립니다. 좁은 몬트리올 한인 사회의 특성 상 개인 정보 및 특정한 사진을 공개하지 않는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